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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과 전설

노촌당(老村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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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85회 작성일 19-07-0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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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촌당(老村堂)

노촌당은 하로서원의 강당으로 후손들이 1845년, 이약동이 관직에 물러난 후 말년을 보낸 유허지에 건립하고 문중 구성원의 회합장소로 이용했다.

1983년 사당인 청백사와 동·서재가 세워져 서원의 면모를 갖추기 전인 조선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서당으로 운영되었고 양천초등학교가 개교되기 전인 1940년대 말에는 임시 초등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전면에 툇간을 넣은 전퇴집이다. 서원 강당 건물에서는 보기드문 가구식 기단을 쌓고 자연석을 활용한 덤벙주초에 원기둥을 세웠다. 2칸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온돌방을 넣었는데, 좌측 방은 경재당(敬梓堂)이라 했다. 방앞과 측면에 대청마루로 연결되는 툇마루와 쪽마루를 달았다. 내부의 지붕틀은 대청마루를 가로지르는 대들보와 양 온돌방 사이에 충량을 걸고 충량과 종보,종보와 종도리사이에 동자주를 세웠다.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며 전반적으로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이다.


사헌부 대사헌과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김정균(金鼎均, 1782-1847)이 지은 노촌당 상량문은 다음과 같다.

한 골짜기 은거하던 곳에서 청백한 덕을 전함이 어제 같은데,
영원토록 사모하고자 당을 지었으니 오직 새롭구나.
도모하는 것은 조상에게서 받은 바이고,
땅은 옛 식읍에서이다.
공손하옵게도 노촌선생은,
마음은 얼음처럼 청백하고,
학문은 정주를 연원하였도다.
갑옷을 던져버렸던 투갑연과 채찍을 성의 문루에 달았던 것은 예문관에 빛나게 기록되어 있고
점필재와 매계노인이 분사(枌社)에서 강습한 것은 매우 정중하였네.
사성의 직분과 교수관은 모든 시냇물이 반드시 동해로 흘러가듯 우러러 보는 아름다움이여
절도영과 자사부는 임금님이 남쪽을 돌아보는 근심을 덜어줬으니
청렴한 덕의 명망은 세가지 능한 것으로 때에 공론이 모두 모였고
충성된 말과 바른 의론은 다섯 조정을 역임하였으니, 임금님의 보살핌
더욱 융성하였도다.
호조참판을 역임하여 지중추부사에 탁발되었으며
기영에 들어가니 삼달을 겸했도다.
바른말을 하고 몸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것은 시대를 구제하려는 정성이 간절함이며
편안하고 아담함은 본래 뜻 잡은 바라.
이에 나이 많은 것으로 사직을 청하였었네.
여봉과 낙사에서는 주무숙과 소요부의 참다운 즐거움 가히 찾을 수 있고
난능과 오교에서는 소태부와 배진공의 즐거운 마음 때로 행함이 있도다.
돌아보건대 이 금릉의 하로촌은 곧 선생이 태어나신 곳으로 만년에 돌아와 은거하던 집이다.
감호강의 물은 맑고 맑아 지급도 물 흐르고 달 비추며
고악산의 구름과 노을은 그윽하고 아득하니 이곳에서 두루적거렸도다.
푸르고 푸른산 맑고 착한 기운 모인 이곳이나서 자라고 늙은 곳이며,
한가로이 벼슬을 사직하고 은거한 아름다운 이곳에서 쉬고 놀며 큰 계책 닦음이로다.
아! 땅은 폐하고 흥함이 있고 일에는 머뭄과 바뀜이 많으니,
평일에 노닐던 자취 돌아보니 어찌 다 그러하지 않은가.
당일에 사시던 집이 남아 있지를 않으니 후손에 있어서는 유지를 보존하고 이룩한 업적을 찬양하는 것으로써 진실로 당을 짓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에 여러분에게 묻고 의존하여 시작하기로 정하고 일의 착수에서
완성까지 며칠이 아니되어 이루니 원근에서 모두 소문을 듣고 모여들어
일어나는 자 많았었네.
오직 가히 장구하리라 어찌 궁벽한 규모에 떨어지랴.
화려하지도 않고 사치하지도 않으며 진실로 조상의 뜻을 잘 잇고 저술함은 도리에서 인한 것이다.
이에 300년만에 고향에 (노촌)당을 지어 공경하게 되었으며 곧바로 4, 5동을 이루었으니 사바으로 송죽은 무성하였네.
아름답구나! 높이 솟으니 곧 자손과 종족이 모여서 노래하고 사모하여
칭송하는 것 뿐만 아니로다.
인륜의 아름다움을 좋아하니 이 또한 후생과 만학이 돌아보고 우러러 존모하는 장소이다.
뜰과 집이 밝고 밝아 화연히 사례의 아름다운 훈계를 받드는 것 같고,
물과 돌이 쪽빛처럼 깨끗하며 완연히 옹기그릇과 표주박만 전하는 그런
청렴한 거풍이로구나.
고금을 우러르고 구부려보니 어찌 오랜 세월 덧없다는 느낌이 없겠으며
아침·저녁 배회하니 항상 우러러 존모하는 생각 간절하도다.
이에 좋은 날을 받아 들보를 올리니, 말을 빌려서 아름다움을 기록하노라.
들보 동쪽에 면을 던지며 축원하노니, 금오산 상쾌한 기운은 푸른 하늘 높이 솟았네.
하늘도 또한 청렴결백한 절개를 위하니, 맑은 호수는 옛 난간을 감아 도는구나.
들보 서쪽에 면을 던지며 축원하노니, 소나무 삼나무가 역력하니 길은 분명하구나.
천년의 정령이 물처럼 있다면
행여 밝은 달 따라 눈같이 흰 시내 건너오시리.
들보 남쪽에 면을 던지며 축원하노니, 가야산 빼어난 빛은 쪽빛보다 푸르구나.
차고 맑은 밤 꽃잎 흐르는 물에 달은 비추고
한곡조 끝나니 거문고의 이치 찾을 수 있네.
면을 들보 북쪽에 던지며 축원하노니, 공동의 안대는 어찌 그리 높은가.
또한 알겠노라. 덕으로 쌓은 이웃은 본래 외롭지 않음을,
단표의 즐거움 사람들이 공경하는구나.
면을 들보 위로 던지며 축원하니, 충만한 하늘의 아름다운 기운 정히 넘쳐 흐르네.
화창한 바람 깨끗한 달은 가이 없으니 당년의 기상 상상하여 알려라.
면을 들보 아래로 던지며 축원하니, 한없이 나오는 물은 흐름을 쉬지 않네.
근원이 멀으니 바야흐로 흐름이 장원함을 알며,
시와 서로써 가히 자손이 이어옴을 알려라.
공경히 원하옵건데, 상량한 후로 조상의 음덕이 더욱 두터워 상서롭고
경사스러움 끝없이 이르게하며, 효제로써 교화를 전하며 조상을 높이고
조종을 공경하며 청렴하고 삼가는 절의를 높이들어 세속에 스승과 모범
이 되며, 위의 들보와 아래의 집을 보수하고 이엉(짚)을 덮으며 사시사철
글 읽고 거문고 뜯으며 쇠함이 없게 하고 바라건대 많은 인재가 배출되
기를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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