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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산수(祝 傘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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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학원 댓글 2건 조회 4,067회 작성일 21-07-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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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산수(祝 傘壽)

                                                                                            이학원: 35世,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이학박사

나는 나이가 팔십이 다 되도록 산수(傘壽)란 말이 무슨 뜻이며,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고 지내왔다. 지난 음력 오월 스무 아흐렛날(2020년 7월 19일)이 내 나이 여든 살이 되는 생일이었다. 막내 숙부님의 3남 2녀 사촌동생들이 생일을 축하한다며 난을 보내왔다. 서울에서 꽃집 배달직원을 시켜 98km의 경춘선 전철을 타고 춘천까지 와서 직접 난을 전해주고 서울로 올라갔다.

귀하고 정성어린 난 화분 선물을 받아들고 예쁜 리본에 쓰인 “축산수(祝傘壽)” 란 한자를 읽는 순간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축산수(祝傘壽)란 말은 팔십세 생일을 축하한다는 의미일 터인데, 왜 한자의 우산 산(傘)자를 넣어 80 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지, 여태까지 한 번도 듣고,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팔십 나이가 다 차도록 산수(傘壽) 란 단어의 정확한 의미와 뜻을 전연 모르고 지냈으니, 내 무식 정도가 도를 한창 넘었다는 생각으로 얼굴이 화끈거렸을 것이다.

곧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팔십 나이, 팔십세, 팔십세 생일, 팔십 생일잔치 등의 낱말을 넣어 그 의미와 뜻을 찾아보았다. “팔십 살 생일잔치를 ‘산수연’이라 한다. 팔십 생일을 ‘산수’ 라 한다.”고 적혀 있었다. 한글로 기록해 놓았을 뿐, 한자로 쓴 ‘傘壽’란 표기도 해 놓지 않았고, 더구나 한자의 우산 산(傘) 글자가 사람의 나이 80을 왜 나타내고 있는지, 그 이유나 의미에 관한 설명은 전연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인터넷을 사용한 세월이 족히 4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내용 설명이 부실하고 무식하기는 팔십 나이인 나와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이숭녕 박사가 감수한 ‘새국어대사전’을 찾아봐도 산수(傘壽)란 낱말이나 뜻과 의미 설명이 없었다.

21년 전 내 아버지 비문을 짓고 썼던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명예교수인 한문학자 황재국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여쭈어보았다. 명쾌한 설명을 해 주었다. “우산을 뜻하는 우산 산(傘) 글자를 해체해 보면, 맨 위에 여덟팔(八) 글자 모양이 있고, 맨 밑 부분을 보면 열십(十)자 모양의 글자가 있다. 이를 합치면 팔십(八十, 80)이 된다. 우산 갓 모양을 닮은 팔(八)자 안을 살펴보면, 사람인(人)자 같은 글자가 4개나 보인다. 네 사람이 우산을 쓰고 있는 모습과도 흡사하여 팔십 나이를 나타내는 한자로서 안성맞춤인 글자이다. 산수(傘壽)란 의미는 ‘이래 뵈도 아직 쓸모가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48세, 49세, 77세, 80세, 88세, 90세, 99세와 같은 중요 나이에 붙어있는 한자어 별칭과 그렇게 부르게 된 사유를 자세히 적어 종이쪽지에 메모를 한 후, 사진을 찍어 카카오 톡으로 즉시 보내 주었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과 같은 박학다식(博學多識)한 귀한 동갑내기 친구다.

나이가 팔십이면 황혼녘 인생이다. 예고 없이 찾아왔던 수많은 삶의 위기를 지혜와 인내와 용기와 희망이라는 파란 우산을 빌려 쓰고, 쏟아지는 눈비와 찬 이슬을 피해 용케 살아남은 사람들이 여덟팔(八)자 안에 보이는 사람인(人)자 모양의 네 사람이다. 이런 의미로 팔십 나이를 산수(傘壽)라 하고, 팔십 생일잔치를 산수연(傘壽宴)이라 부른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상형문자와 뜻글자라는 한자어 묘미를 처음으로 느끼며 실감이 왔다.

“학부를 마치면 다 안다고 기고만장 하고, 석사를 마치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박사를 따면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썼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의 문병로 교수의 글이 생각났다. 요즘 들어 보통 사람들은 환갑연(還甲宴,60세)이나 고희연(古稀宴,70세), 희수연(喜壽宴,77세), 산수연(傘壽宴,80세), 미수연(米壽宴,88세), 졸수연(卒壽宴,90세), 백수연(白壽宴,99세)과 같은 오래 산 것을 축하하는 잔치를 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집안 가족이 모여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잔치를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차산업인 농업 중심의 동족촌(同族村) 중심 사회에서 첨단기술과 초고속 스피드를 지향하는 4차산업 사회로 발전하면서 부모자식 간에, 형제자매 간, 일가친척들과 지인(知人)들이 각각 국내외로 뿔뿔이 흩어져 매일 바쁘게 살아가지 않으면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작년 말부터 중국 우한에서 발생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우한폐렴바이러스라는 괴질이 우리나라에 까지 전파 확산되면서, 그 대응책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사회적 거리 두기’란 것이 있었다. 말할 때 입에서 나오는 침방울이 상대방에게 닿지 않도록 2~5미터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방역 당국이 내 놓은 국민들의 일상생활 지침 중의 하나이다. 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철저히 이행되면서부터 인정(人情)간의 거리도 멀어지고, 부모자식간의 거리, 형제자매간의 거리, 친인척간의 거리, 친구 상호간의 관계 거리도 차츰 멀어져 가는 이상한 세상으로 변해갔다. 인정(人情)이 메말라가는 삭막하고 팍팍한 삶의 세상으로 변화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며느리가 30만원을 들여 팔순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용돈으로 쓰라면서 생일 축의금 100만원을 봉투에 넣어 내 놓았다. 옆에 앉았던 마누라가 즉석에서 그 중 50만원을 빼앗아 갔다. 마누라의 팔순까지는 6년이란 세월을 더 기다리고 있어야만 빼앗긴 원금 50만원과 그 이자를 덧 붙여 나도 당신처럼 강탈해 올 수 있을 것인데, 그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이 뻔하기에 빼앗긴 이 즐거움을 잘 간직하며, 여생을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별도리가 없을 것 같다.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제(詩題)를 써놓고, 피를 토하듯 빼앗긴 조국 산하에 광복이라는 따뜻한 봄이 찾아오기를 염원하고 기원하더니, 결국에는 빼앗긴 그 들인 내 조국에 광복이라는 따뜻한 봄이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산수(傘壽)의 해질녘, 이 장엄한 황혼 길에 들어선 늙은 내가 마누라에게 빼앗긴 그까짓 작은 돈 50만원을 두고 살아서 못 받을까봐 하루 빨리 돌려달라고 기도하며, 안달하고, 아우성을 치며 살아서야 되겠는가?

여보! 그 돈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당신의 돈을 당신이 가져간 것이었소. 여보! 당신의 청춘과 사랑과 헌신을 훔친 늙은 도둑 하나가 흘러간 세월과 그리움으로 눈을 적시며, 황혼 길에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어 외롭게 당신 곁에 서 있을 뿐이오. 여보! 나는 한평생 당신에게 진 빚을 못 갚는 영원한 채무자(債務者)일 뿐이오.

                                                                                                                                    前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교수
                                                                                                                                        강원대학교 교사교육원 원장
                                                                                                                                        강원대학교 중등교원연수원 원장
                                                                                                                                        한국사진지리학회 회장
                                                                                                                                        한국지리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 부회장
                                                                                                                                        대한지리학회 학술부장
                                                                                                                                        서울대학교총동문회 이사
                                                                                                                                        강원도 교원단체총연합회 대의원
                                                                                                                                        미국 오하오 주립대학교 연구교수
                                                                                                                                        황조근정훈장 수상

댓글목록

231343님의 댓글

231343 작성일

교수님!
주옥같은 한문장 한뜻을 감명깊게 읽어고 가슴에 세겨읍니다
건당하시고 오래오래 뵙기를 희맣합니다. 병권.

이학원님의 댓글

이학원 작성일

존경하는 노촌 할아버지 종손 이병권님!
이 무더운 2021년 8월 10일, 한 여름 이 때 누가 이런 내 글을 읽어줄까 염려했지만,
종손께서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감개무량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모든 문중 활동도 예외없이 중단되어 후손된
뜻있는 자손들이 마음조리며 지내왔으나 노촌기념사업회 기본 사업 활동은 규모는
축소되었으나 계속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조상의 음덕과 뜻있는 후손들의 정성이
모아지고 불철주야 애쓰시는 종손님의 덕택이라 생각합니다.

노촌 할아버지 후손인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이 노촌기념사업회 자유게시판에
글 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족한 글이나마  몇 편 올렸습니다.
좋은 세월이 얼른 돌아와  자랑스러운 선조 노촌할아버지의 사업이 날로 번창하여
우리 후손들과 지역사회 및 국가 발전에 큰  도움을 주는 문화사업이 되도록 간절히
소망합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35세 학원 배상.


사단법인 노촌기념사업회 / 경상북도 김천시 하리안길 19-6(양천동 830) / E-Mail: nowon_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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